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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부리바>와 우크라이나 [허준혁한방]
  • 기사등록 2022-07-20 16:48:54
  • 기사수정 2022-09-02 19:37:53

[UN피스코=허준혁 ]


<대장 부리바>와 우크라이나 [허준혁한방]


17세기 동유럽의 강대국이던 폴란드는 코사크족과 함께 오스만 터키에 맞서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동슬라브계로서 북유럽에 거주하던 Rus 민족이 남하해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를 중심으로 정착했던 러시아는 폴란드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몽골의 지배도 받았다.


그러나 폴란드-코사크 동맹에 균열이 생기면서 폴란드 역사에 ‘대홍수’라 불리는 재앙이 찾아오며 유럽 판도를 뒤바꾼 대사건이 일어난다.


1648년 코사크 대봉기가 그 것이다. 폴란드와 함께 오스만 터키의 동유럽 진출을 가로막아 유럽을 사수했지만 폴란드는 코사크족들의 비옥한 대초원을을 탐하기 시작한다. 토지를 빼앗기고 농노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코사크의 분노가 ‘대홍수’의 서막이 된다.


율 브리너의 열연으로 유명한 <대장 부리바>(1962)는 이를 극화한 작품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지역 출신 니콜라이 고골이 1842년 러시아어로 쓴 소설 ‘타라스 불바’(Taras Bulba)가 원제. 대장(隊長) 부리바는 일본식 번역. 코사크의 대초원마저 잃게 될 처지가 되자 용맹한 타라스 불바가 지휘하는 코사크족은 폴란드군을 제압하고 드브르성을 포위하며 승기를 잡아간다.


그때 함께 종군했던 대장 부리바의 첫째 아들인 안드레이가 아버지와 동족을 배신한다. 그는 유학 시절 나탈리아를 만나 첫눈에 반했지만 나탈리아의 오빠를 살해하고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왔었다.


전쟁중에도 안드레이는 사랑하는 나탈리아가 걱정되어 몰래 성 안으로 들어갔지만 붙잡히고 만다. 적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화형에 처하게 된 나탈리아를 살리기위해 안드레이는 폴란드군에게 가장 필요한 식량조달을 약속하고 성밖의 소떼를 성안으로 들여보낸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시점에 배신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왜 그랬느냐고 묻지만, 돌아온 아들의 답은 "그저 그래야했을 뿐"이라는…이에 아버지 부리바는 “너에게 생명을 주었으니, 그 생명을 거두는 것도 내가 하겠다”며 아들을 처형한다.


자신을 위하다 사라져간 연인 안드레이 불바의 시신을 부여안고 나탈리아가 오열하며 영화는 끝난다. 폴란드-코사크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자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라 할 수 있을까?


바로 이 <대장 부리바>가 이끄는 코사크족.. 카자크족이라고도 하며 우리에겐 코작으로 더 알려져있는 이민족이 지금의 우크라이나이다. 코사크란 말이 슬라브어로 ‘자유민’이라는 어원에서 유래된데서도 알 수 있듯 여느 혈연적 민족집단과는 달리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한다. 


또한 <대장 부리바>에서 상징되듯 전투에는 특화된 능력을 지닌 유목민이다.  코사크족들은 18세기 후반, 러시아가 독립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러시아의 용병역할을 한다. 크림 전쟁, 나폴레옹 전쟁, 코카서스 전쟁, 오스만튀르크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러시아 제국이 볼셰비키 혁명으로 사라지자, 코사크들은 볼셰비키와 전쟁을 선포하고, 1918년경에는 우크라이나국, 돈공화국 등 여러 독립적 코사크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볼셰비키군에 패하면서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70여 년 만에 독립을 맞게 된다.


객관적 군사력에서는 비교가 안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강렬한 저항을 펼치고 있는 것도 <대장 부리바>의 나라라는 면을 고려하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2019년 미국 케이블 방송 HBO 5부작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다. 사고가 나자 소련 정부는 인근 주민들을 분산하지만 특히 고령자들의 저항이 극심했다. 드라마의 한장면 중 혼자 소의 젖을 짜던 할머니와 군인들의 대화...


“총 들고 찾아온 병사가 처음이 아니야. 내가 열두 살 때 혁명이 일어났지. 차르의 병사들, 볼셰비키들…. 다음에 스탈린이 왔고 기근이 터졌지. ‘홀로도모르’… 다음으로 세계대전. 독일 애들, 러시아 애들, 더 많은 병사, 더 많은 기근, 더 많은 시체. 형제들은 돌아오지 못했어. 하지만 나는 남았고 아직 여기 있어. 그 모든 것을 겪고….”


그러나 군인은 총으로 소를 쏴버린다. 망연자실한 할머니는 군인들의 뒤를 따른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명장면이다.


히틀러의 나치독일과 스탈린의 숙청에서 죽어간 1400만명의 정치적 학살의 핵심지대도 우크라이나..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해바라기’에서 소피아 로렌이 러시아 전선으로 간 남편을 찾아 광활한 대륙을 해맬 때 기찻길옆으로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펼쳐 진다. 기차에서 내려 황금색 물결의 해바라기 밭을 보고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 말한다. 수많은 이탈리아 병사들이 죽어서 묻힌 곳이라 더 무성해졌다고... 그 해바라기밭도 우크라이나이다. 


유럽의 절대 강국이었던 폴란드가 20년간 이어진 전쟁 결과 영토와 인구의 3분의 1을 잃고 쇠퇴기로 접어든 반면, 승자가 된 스웨덴과 러시아는 전성기로 들어서고 속국이던 프로이센은 독립해 독일 통일로 출발했다.


오스만 터키에 맞서 여러차례 유럽을 구한건 폴란드였지만 폴란드를 멸망시킨 건 유럽강대국들간의 담합이었다. 한때 종주국이던 러시아의 위협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우크라이나를 가장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가 폴란드라는게 아이러니하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420만명이나 받아들이는 한편 우크라이나를 위한 사실상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불우한 역사가 마치 우리나라의 근세사를 보는 것 같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상황들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온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모두에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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